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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가스 저장소가 천체투영관으로

거대 가스 저장소가 천체투영관으로

2018 어웨이크닝스 ADE 리뷰

글 : 이대화

사진 출처 : 어웨이크닝스 페이스북

ADE(Amsterdam Dance Event)에 처음 간다고 하면 경험자들이 하나 같이 추천하는 이벤트가 둘 있다. 하나는 AMF(Amsterdam Music Festival), 또 하나는 어웨이크닝스(Awakenings)다. AMF가 탑 100 디제이 1위를 발표하는 EDM 최대 이벤트라면 어웨이크닝스는 드럼코드(Drumcode), 클락웍스(Klockworks) 레이블 파티가 열리는 테크노 최대 이벤트다. 둘 모두 각 장르의 메가 이벤트 성격을 갖고 있다. 화려한 라인업과 스펙터클한 프로덕션을 자랑한다. 다만 AMF가 더 EDM 페스티벌적이고 어웨이크닝스는 더 언더그라운드적이다. 열리는 장소부터 그렇다. AMF는 잠실 주경기장 분위기의 암스테르담 아레나(Amsterdam ArenA)에서, 어웨이크닝스는 한때 가스공장이었던 가슈아우더(Gashouder)에서 열린다. 둘 모두 커다란 돔 형태의 공연장이다.

어웨이크닝스는 네덜란드 최대 테크노 공연 브랜드다. 매년 6월 말에 네덜란드에서 대형 테크노 페스티벌을 연다. 그러나 1년에 1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컨셉의 서브 이벤트를 연중 수시로 개최한다. 올해도 10월에 독일 타임 워프(Time Warp)와 콜라보해 커넥트(Connect)란 페스티벌을 열었고, 연말엔 무려 4일에 걸친 대형 테크노 파티가 예정되어 있다. ADE 기간에도 주중 주말 가릴 것 없이 매일 파티가 열렸다. 올해엔 목요일 드럼코드, 금요일 모자이크(Mosaic), 토요일 조셉 카프리아티(Joseph Capriati), 일요일 포톤(Photon) 파티가 열렸다. 매번 가슈아우더에서 열려 ‘어웨이크닝스=가슈아우더’ 공식이 생겨나기도 했다.

어웨이크닝스가 유럽 테크노 페스티벌 중 왕좌를 차지한 원동력 중 하나는 현란한 디자인의 무대 프로덕션이다. 빅 네임 위주의 화려한 라인업도 중요한 축이지만 테크노 음악을 즐기며 그만한 규모의 프로덕션을 만끽할 수 있는 이벤트는 많지 않다. 본인들도 그걸 알기 때문인지 매번 행사마다 무대 디자인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

이번 ADE 이벤트에서도 마치 폐허가 된 우주정거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거대한 철골 구조가 무중력 상태에서 불규칙하게 솟은 느낌의 무대를 만들었다. 그냥 무대만 현란하게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았다. 실내 돔인데도 천장을 360도 돌아가는 불꽃 쇼를 선보였다. 삼각형 모양을 한 백색의 모빌들이 공중에서 수직으로 움직였다. 중간에 거대한 미러볼을 달고 엄청난 양의 레이저를 분사해 돔 전체가 거대한 천체 투영관으로 변하기도 했다.

사운드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묵직한 베이스가 머리 끝까지 차오르면서도 하이햇이 선명하게 찰랑거렸다. 공간감도 좋아 스케일 큰 빅 룸 테크노가 나오면 그저 황홀할 뿐이었다. 가스 저장소에서 스펙터클한 비주얼과 사운드로 약 4000명의 관객과 테크노를 듣고 있으니 머리 속에 이 생각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이런 대형 테크노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 올까?’

재밌는 건 이런 이벤트를 일상적으로 즐기는 네덜란드와 유럽 테크노 팬들이라고 해서 특별한 취향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내가 갔던 파티는 마세오 플렉스(Maceo Plex)의 모자이크 나잇이었는데, 앞서 틀던 플로팅 포인츠(Floating Points)와 벤 유에프오(Ben UFO)의 아주 딥한 셋보다 상대적으로 대중적인 마세오 플렉스 셋이 훨씬 반응이 좋았다. 그들도 안개처럼 몽롱한 킥보다 미드 펀치감이 또렷한 킥을 좋아했다. 마세오 플렉스가 등장해 댐핑 강한 킥과 커다란 빌드업-드랍을 선사하자 고개를 끄덕이던 분위기가 미친 댄스 분위기로 바뀌었다. 프로덕션과 어울리는 블레이드 러너 풍 신스와 멜로딕 리드까지 나오자 춤이 격해지고 함성이 커졌다.

앞서 새벽 세시 벤 유에프오 때부터 BPM은 이미 130을 넘겼다. 이 속도감에 마세오 플렉스의 거대한 킥 리버브가 가세하자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마리화나가 합법인 나라답게 공간 곳곳에서 이상한 담배 냄새가 났고, 쏟아진 맥주로 흥건한 바닥에선 오줌 냄새가 났으며, 과격한 춤을 추는 사람들 사이로 술에 취해 업혀 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미 제정신이 아닌 듯한 여자 관객 하나가 “어디서 왔냐”고 묻더니 “사우스 코리아”란 말을 듣고 혼절할 듯 웃으며 휘청휘청거렸다. 네덜란드의 테크노 파티 분위기는 그랬다. 어둡고 더티했다.

마세오 플렉스도 좋았지만 이어서 나온 헬레나 하우프(Helena Hauff)는 더 좋았다. 마세오는 이 장르 저 장르 오가며 툭툭 던지듯 선곡했지만 헬레나는 일관된 바이브와 치밀한 구성으로 1시간 30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전속력으로 달렸다. 강력하디 강력한 애시드 일렉트로 계열로 브레이크를 제외하면 한 마디의 에너지 다운 없이 초절정 흥분을 유지했다. 어플로 BPM을 체크해보니 138이었다. 이미 아침 일곱시였고 체력이 완전히 방전됐지만 제발 끝나지 않길 바라며 아껴 듣듯 끝까지 함께 했다.

헬레나의 디제잉 실력은 대단했다. 올 바이널 셋이었는데도 비트 매칭 실수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치밀한 믹싱 포인트까지 갖춰 한 번도 분위기가 죽지 않았다. 관객에게 등을 보이고 바이널을 고르다가 좋아하는 구간이 나오면 뒤로 돈 상태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그 뒤로 돌아 추던 춤이 계속 머리 속에 남는다. CDJ 노브를 돌리며 선곡하는 모습과는 차원이 다르게 멋있었다.

디제이들도 대단했지만 관객은 더 대단했다. 음악이 내려간 아침 8시까지 아무도 집에 가지 않았다. 4천 명 가까이 되는 인파가 행사 종료까지 가슈아우더 안을 꽉 채웠다. 메인 헤드라이너 마세오 타임이 끝나도 사람이 빠지거나 분위기가 다운되지 않았다. 게스트를 신청해 들어온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입구에서 5 유로를 기부해야 했지만 항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노는 유료 관객들이 많으니 이만한 프로덕션과 라인업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어웨이크닝스 같은 대형 테크노 이벤트가 열리는 날이 올까? 디제이와 프로모터 못지않게 관객 역시 팽창하고 성장했을 때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아담 베이어(Adam Beyer) 못지않게 한국의 어웨이크닝스 관객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한다.

October 24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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