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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 100 디제이 1위 발표 현장을 가다

탑 100 디제이 1위 발표 현장을 가다

거대한 이슈 지진의 진앙지

글 : 이대화

사진 출처 : AMF 페이스북

AMF(Amsterdam Music Festival) 티켓을 구하기 위한 경쟁은 지독히도 치열했다. 디제이맥 탑 100 1위를 발표하는 자리인데도 디제이맥 이름으로 아주 제한된 개수의 취재 티켓 밖에 받지 못했다. ADE(Amsterdam Dance Event) 내 모든 이벤트를 들어갈 수 있는 프리 패스 팔찌를 구매한 사람들도 이 팔찌로는 입장이 안 된다는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돌아가곤 했다. 여기저기서 이럴 거면 왜 비싼 돈을 주고 프리 패스를 판매하느냐는 볼멘 소리들이 나왔다.

AMF는 ADE 기간 내 최대 규모 행사로, 2013년부터 열리기 시작했다. 첫 회도 아레나 규모인 RAI에서 열렸고, 2014년부터는 더 넓은 암스테르담 아레나(Amsterdam ArenA)에서 열리고 있다. 내부에 들어가면 잠실 주경기장이 돔 안에 들어간 듯한 거대한 실내를 마주하게 된다. 무대 규모도 울트라 코리아 메인 스테이지에 필적했다. ‘이게 실내 이벤트라고?’ 입이 쩍 벌어졌다. 바로 이 AMF에서 2011년부터 디제이맥 탑 100 디제이 1위가 발표되고 있다. 그 이전엔 런던 클럽 미니스트리 오브 사운드(Ministry Of Sound)에서 시상식 파티가 열렸다. 클럽에서 아레나로, EDM이 성장한 만큼 탑 100 디제이 규모도 커졌다.

무대 옆 전광판에 2018 탑 100 순위가 100위부터 천천히 공개되고 있었다. #7, #6, #5, #4, 점점 낮아지던 숫자가 4위에 멈췄고 조명이 어두워지며 1위 발표를 위한 드라마를 연출하기 시작했다. 3위, 2위, 1위는 동시에 공개하는 모양이었다.

올해 순위에 오른 아티스트들의 영상이 끝나고 디제이맥 대표 마틴 카벨(Martin Carvell)을 소개하는 멘트가 나오자 일제히 스마트폰이 하늘로 올려졌다. 족히 만 명은 넘어 보이는 관객들 대부분이 1위 발표 순간을 함께하고파 참석한 것 같았다. 비장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함께 긴장감을 응축시켜가던 분위기가 “마틴 개릭스!”라는 발표와 함께 거대한 함성으로 발전했고, 마치 빅 룸 프로그레시브의 드라마틱한 빌드업-드랍을 보는 것 같았다. 배경 음악으론 마틴의 ‘High On Life’가 흘렀다.

마틴은 흥분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소감을 외친 뒤 신곡 ‘Latency’를 첫 곡으로 하는 1위 기념 셋을 플레이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친구에게 누가 1위인지 전해주느라 바빴다. 공연장 들어오면서 봤던 프레스 센터에선 기자들이 소식을 타전하기 바빴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SNS에 탑 100 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독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페이스북 페이지들이 자극적인 반응 유도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지진의 진앙지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탑 100 투표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 발표 순간을 SNS가 아닌 눈과 귀로 확인했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기분이 들었다. 티켓 구하기가 그토록 치열했던 이유는 다들 이 기분과 추억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을까?

사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1위가 될지 대충 예상이 됐다. 도시 번화가마다 마틴 개릭스 바디 스프레이 광고가 도배되어 있는 걸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버거 가게에서도 마틴 로고가 찍힌 버거를 팔고 있었다. 유럽과 네덜란드에서 마틴 개릭스는 우리가 상상하는 수준을 훨씬 넘어선 팝 스타다. 심지어 올해 투표에선 팝 EDM을 대표하는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와 체인스모커즈(The Chainsmokers)가 큰 폭의 순위 하락을 겪었다. 비록 EDM 내에서지만 ‘더 디제이적인’ 사람들에게 표가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교적 디제이적인 활동을 하고 있으며 유럽 내 팝 스타 위치에 있는 그가 1위를 하는 건 당연해 보였다. 발표 전날 디제이맥 편집장 한 명과 식사를 했는데 그도 마틴 개릭스가 받을 것 같다고 했다. 기념품 샵에서 내 디제이맥 명찰을 본 직원이 “누가 1위냐”고 묻길래 “당신은 어떻게 예상하냐”고 물었더니 그도 마틴 개릭스가 받을 것 같다고 했다. 마틴은 대부분이 동의하는 우승 후보였고, 이변은 없었다.

탑 100 디제이 1위 발표와 함께 AMF를 대표하는 이벤트는 ‘투 이즈 원(II=I)’이다. 말 그대로 두 디제이가 하나가 되는 백투백 이벤트다. 백투백은 그 자체론 특별할 게 없지만 투 이즈 원은 전 세계 가장 유명한 디제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올해는 데이빗 게타(David Guetta)와 디미트리 베가스 & 라이크 마이크(Dimitri Vegas & Like Mike)가 함께 음악을 틀었다. 2017년엔 하드웰(Hardwell)과 아민 반 뷰렌(Armin Van Buuren)이었다. 이처럼 특별한 경험의 선사는 ADE 내 최대 규모 AMF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백투백의 미학 만을 기준으로 한다면 이날의 무대는 별로 특별하지 않았다. 백투백이란 ‘같이’ 하나의 셋을 만들고 서로의 즉흥 선곡에 영향 받으며 원래 없던 새로운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플레이 방식이다. 셋을 미리 짤 수 없기 때문에 즉흥적인 구성력과 믹싱 실력이 시험대에 오르는 모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나 둘은 EDM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하면 그냥 각자의 길만 갔다. 이전 곡을 무엇으로 받을까 고민한 흔적 없이 기계적으로 자신의 히트곡을 틀었다. DVLM가 ‘The Hum’을 틀고 그걸 게타가 ‘Titanium’으로 받는 식이었다. 실수 없이 깔끔하게 넘기는 믹스 실력은 대단했지만 수준 있는 B2B라기보다는 유명한 디제이들이 한 무대에 올라가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게타는 ‘Like I Do’, ‘Play Hard’, ‘I Gotta Feeling’ 등을 틀었고, DVLM가 ‘Tremor’, ‘Arcade’ 등으로 받았다. 페스티벌에서 자주 보던 레크레이션도 이어졌다. 관객들 전체를 왼쪽 오른쪽으로 오가게 하거나 셔츠를 벗기기도 했다. 처음 가 본 AMF는 어쩐지 가장 ADE답지 않은 이벤트였다.

그러다 문득 어웨이크닝스(Awakenings)와 러브랜드(Loveland)만이 ADE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ADE의 진짜 놀라운 점은 마세오 플렉스(Maceo Plex) 파티와 아레나 규모 EDM 이벤트를 동시에 즐길 수 있고 그 이벤트들이 모두 꽉 찬다는 데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올해 ADE는 리카르도 빌라로보스(Ricardo Villalobos) 파티에 줄이 너무 길어 들어가지 못하고 하드웰의 라이브 고별 무대가 순식간에 매진되는 등 언더그라운드 주류 가릴 것 없이 빅 이벤트 대부분이 성황을 이뤘다. 그런 다양성이 ADE를 대체불가능한 이벤트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낮에는 리빌드(Revealed) 레이블 팝 업 스토어에 갔다가 밤에는 클럽 셸터(Shelter)에서 밤새 테크노를 들을 수도 있었다.

AMF가 끝나고 우버를 타고 호텔로 돌아가는데 버스 정류장에 스피닝 레코즈(Spinnin’ Records) 광고가 붙어 있었다. 다음날은 러시 아워(Rush Hour) 바이널 샵과 레드 라잇 라디오(Red Light Radio)를 방문할 예정이었다. 마음만 먹으면 가장 딥한 언더그라운드에서 가장 커머셜한 EDM까지 모두 최상 퀄리티로 즐길 수 있는 곳이 ADE였다. AMF는 그중 커머셜을 대표하는 이벤트였다.

October 24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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