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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조드 베트남에서 맞은 새해

에피조드 베트남에서 맞은 새해

순수한 섬 푸꾸옥에서 펼쳐지는 11일간의 페스티벌

Words: ARIEL JO

오후 5시 47분, 2019년 베트남의 마지막 해가 졌다. 다홍빛으로 물든 구름과 함께 빨갛고 동그란 태양이 지평선에 맞닿았다. 해변에 있는 사람들은 바다 저 너머로 사라져가는 해를 바라보면서 한 해를 기억하고 마무리했다. 등 뒤로는 잔잔한 테크노 음악이 나왔고 몇몇 사람들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다. 태양이 완전히 바다 너머로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며 소원을 빌었다.

베트남 푸꾸옥은 남국의 정취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한국의 제주도나 일본의 오키나와처럼 현지인들도 선망하는 휴양지다. 남북으로 48km에 이르는 기다란 섬은 맑고 투명한 바다와 99개의 산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채 발굴되지 않은 순수미를 자랑하는 섬이기에 비행 노선도 많지 않고 섬 안을 둘러볼 수 있는 교통편도 넉넉하지 않지만,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아름다움들을 감상하다 보면 그런 불편함 쯤이야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순수한 섬 푸꾸옥에는 그 정취를 그대로 담은 페스티벌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 2016년 처음으로 개최한 에피조드 페스티벌은 올해 4회를 맞이하여 2019년 12월 27일부터 2020년 1월 7일까지 개최되었다. 11일간의 라인업에는 제이미 존스(Jamie Jones)와 칼 크레이그(Carl Craig), 로코 다이스(Loco Dice), 르하(Lehar), 에이전트 오브 타임(Agents of Time), 피드레스(Fideles), 아고리아(Agoria), 부치(Butch), 조지아 안지우리(Giorgia Angiuli), 잇츠 에브리띵(Eats Everything), 패트릭 토핑(Patrick Topping), 버즈 오브 마인드(Birds of Mind) 등이 포함되었다. 디제이맥 아시아는 푸꾸옥을 테크노의 섬으로 만들어버린 에피조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푸꾸옥의 백사장으로 향했다.

풍성함이 자리잡은 베뉴

에피조드는 푸꾸옥섬 서쪽의 선셋 소나타 비치 리조트(Sunset Sonata Beach Resort)의 긴 해변에 자리 잡았다. 숙소가 모여있는 곳과는 거리가 있어 택시를 타고 이동을 했다. 택시 가격이 저렴해서 부담은 없었지만, 중앙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총알택시는 에피조드의 어느 순간보다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하여 만든 티켓 부스에서 입장 밴드를 받고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 순간 부드러운 모래알들이 샌들을 뚫고 들어와 발을 간질였고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

넓고 공허할 수도 있는 해변을 짧은 시간에 색다른 분위기로 연출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에피조드는 깔끔한 화이트 톤과 대나무의 길쭉한 선을 활용한 무대로 전반적인 통일감을 주었고, 거대 조형물로 공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 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에피조드의 명물인 살바도르 달리의 코끼리(Salvador Dali’s The Elephants) 조형물이었다. 가느다란 다리를 가진 4마리의 코끼리들은 파도 위에 설치되어 있어 마치 코끼리들이 바다에서 헤엄치다 해변으로 올라온 것만 같았다.

에피조드는 총 4개의 스테이지, 메인 스테이지(Main Stage), 프리스비 스테이지(Frisbee Stage), 에그 스테이지(EGGS Stage), 쉘 스테이지(Shell Stage)로 구성되어 있었다. 화려한 LED조명을 자랑하는 메인 스테이지는 4개의 스테이지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고 12월 31일 카운트다운을 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언제든지 하늘로 떠오를 것 같은 UFO처럼 보이는 프리스비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프리스비 모양을 하고 있었으며 장난스럽게도 영국 출신의 테크노 DJ 벤 UFO(Ben UFO)가 뜨거운 무대를 선보이기도 한 곳이다. 6개의 계란 모양의 조형물들이 설치되어 있는 에그 스테이지는 강한 비트의 댄스 플로어를 자랑했고 조개 껍데기 모양을 한 쉘 스테이지는 마치 실내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며 더욱 풍성한 사운드를 즐길 수 있었다. 메인 스테이지와 프리스비 스테이지 사이에 있는 거대한 대나무 구조물은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으며 취한 상태에서 길을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날이 어두워지면 은은하게 빛을 내는 조형물들이 또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공간을 채우고 나누는 연출에서 내공이 느껴졌다. 단순히 미적인 느낌에만 치중했다는 관객들의 의견도 있었지만, 공간 연출과 곳곳에 숨어있는 작은 공간들이 특유의 아늑함을 선사했다고 생각한다.

음악으로 물든 새해

에피조드는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페스티벌이다. 당일 공지되는 세부 타임테이블, 알리지 않는 그들만의 이벤트, 걷기 힘든 모래사장. 그럼에도 에피조드가 방문한 모든 사람들에게 긴 여운을 주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는 온전히 음악일지도 모른다. 테크노 음악 특유의 몽롱함에 여타 페스티벌과는 다르게 평온한 분위기가 더해져 우리 마음에 더 큰 자극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에피조드의 하루는 오후 4시부터 시작한다. 24시간동안 멈추지 않는 스케줄 탓에 하루의 기준이 무의미하지만, 보통 타임테이블의 첫 순서가 그렇다. 프리스비 스테이지에서 프라하 출신의 하우스 DJ 브루노 커티스(Bruno Curtis)의 셋이 시작 되었고, 브루노 특유의 그루비하고 멜로디컬한 사운드와 함께 오후 5시 47분 2019년의 마지막 해가 졌다. 해가 지고 조명이 빛을 바랄 때, 모스크바 출신의 하우스, 테크노 DJ 콜포드(Kolford)가 메인 스테이지 무대에 올랐다. 메인 스테이지의 사운드 시스템과 조명 효과는 그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에피조드의 2019년 마지막 셋은 이비자에서도 유명한 베를린 출신의 테크노 DJ 유앤미(youANDme)가 장식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DJ답게 그의 셋은 2019년 한 해를 보내기 충분했다. 12시가 다가올 무렵, 메인 스테이지는 카운트다운을 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3, 2, 1 해피 뉴 이어!”

이어서, 이탈리아 출신의 프로듀서 겸 DJ 르하(Lehar)의 웅장하고 멜로디컬한 분위기의 테크노 셋으로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포옹을 하고 새해를 기념했다.

짧았던 카운트 다운이 지나고 사람들은 흩어져 자신들만의 새해를 기념했다. 어떤 이들은 해변을 바라보며 맥주를 마셨고 또 어떤 이들은 푸드코트 옆 작은 해먹에서 물담배를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새해에도 춤추는 것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도 많았고 디제이맥 아시아 또한 그랬다. 프리스비 스테이지에서는 독일 레이블 Giegling의 쇼케이스 무대가 장장 8시간 동안 펼쳐졌고 몰리(Molly)와 콘스탄틴(Konstantin), 파퀴타 고든(Paguita Gordon)등의 DJ들이 선사하는 셋에 취해 우리는 2020년 첫 태양이 뜰 때까지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

특별함이 더해진 페스티벌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에피조드 페스티벌은 지난 해의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면모를 보였다.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씬에서 요즘 떠오르는 이슈인 친환경 문제에 있어서 에피조드도 발 벗고 나섰다. 에피조드는 매일 해변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청소했고 페스티벌 내에서 플라스틱 사용을 금지했다. 캔에 담긴 물을 판매하는 베트남 회사 beWater와 스폰서 제휴를 맺기도 했고 ‘플라스틱이냐 지구냐 (Plastic or Planet)’과 같은 강의도 준비했다. 친환경을 강조했던 에피조드의 행사장 내에서는 쓰레기를 찾아볼 수 없었고 관객들 또한 이러한 가이드라인에 공감하며 함께했다.

또 다른 특별함은 컨셉 마켓(Concept Market)이다. 모스크바에 기반을 둔 국제 예술 및 패션 커뮤니티인 컨셉 마켓은 개인 디자이너들이 모여 주얼리, 의류, 타투, 메이크업 등을 관객에게 선보이고 판매하는 곳이다. 쉽게 보지 못한 다양한 상품들이 모여 있는 컨셉 마켓은 스테이지에서 놀다가 지친 관객들에게 볼거리와 즐길거리를 제공하는 장소였으며 소셜 미디어를 위한 사진을 찍기 좋은 장소였다. 실제로 많은 여자들이 화려한 조명아래서 셀카를 찍는 것을 목격하였다.

에피조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도 다뤘다. 매일 오후 2시마다 예술관련 다양한 워크샵 프로그램이 진행됐고 인도 출신의 명상 강사인 푼누 싱 와수(Punnu Singh Wasu)가 힐링 음악과 함께 선보이는 명상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메인 스테이지에서는 오후 4시 30분마다 요가 마스터 사라 라말호(Sara Ramalho)가 하사(Hatha) 요가 클래스를 진행하며 관객들에게 릴렉스할 수 있는 시간을 제공했다. 이외에도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다도를 즐길 수 있는 티 세레모니(Tea Ceremony)와 몸을 알록달록 꾸미며 나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바디 아트(Body Art) 등의 프로그램으로 관객에게 폭 넓은 즐길 거리를 제공했다.

에피조드, 그 자체만으로 특별했다. 특히 베트남과 베트남 음악 씬에서는 더욱 그랬다. 올해 96개국의 관객들이 에피조드에 참가했고 이 숫자는 이 행사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였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베트남에서 이러한 음악 페스티벌을 개최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을 못했기에 그 의미는 더욱 특별하다. 2019년 마지막 해를 보며 간절히 소원을 빌었던 것처럼 이제는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거듭나려는 에피조드가 베트남 음악은 물론 베트남 로컬 DJ와 프로듀서의 성장에 큰 도움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January 17t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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