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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den,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한 걸음씩

Raiden, 아시아를 넘어 세계로 한 걸음씩

한국의 디제이이자 프로듀서 레이든은 1년의 1/3을 해외에서 보낸다. 그곳에서 얻은 경험과 자신감으로 세계 EDM의 중심으로 한 걸음씩 전진 중이다. 

글 : 이대화

실제로 만나본 레이든(Raiden)은 내성적인 말투의 소유자였다. 눈매는 수수하고, 동그랗고, 쌍꺼풀도 없었다. 집에 돌아와 녹취 파일을 틀어보니 처음 10분은 긴장한 듯 작게 말해 파일 음량을 한껏 키워야 했다. 그런 그가 페스티벌 메인 스테이지에서 쭉쭉 팔을 뻗으며 자작곡을 선보이고, 가끔은 부스를 밟고 올라가 대담한 즉흥연주를 선보이는 게 신기했다. “저도 제가 신기해요. 옛날에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도 평소엔 소심하고 샤이한데 무대에선 기타에 불을 지르잖아요. 저도 그런 성향이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인 것 같아요.”

레이든은 세계 EDM 씬의 중심까지 다가간 몇 안 되는 아시아 디제이 중 하나다. 그렇다고 리드 그룹에 속한 정도는 아니지만, 아시아에서 태어나 여전히 아시아에 살고 있는 디제이 중엔 단연 앞서고 있다. 지금 비트포트(Beatport)에 들어가보니 프로토콜 레코딩스(Protocol Recordings) TOP 10 트랙에 레이든이 만든 ‘C’est La Vibe’, ‘Acid Love’가 각각 3위와 8위에 올라있다. 역시 마틴 게릭스(Martin Garrix)의 스탬프드 레코즈(STMPD RCRDS) TOP 10을 검색해보니 레이든의 ‘Keep My Light On’이 4위에 올라있다. 그는 2017년엔 한국인 최초로 울트라 마이애미(Ultra Miami) 메인 스테이지에 섰다. 같은 해 투모로우랜드(Tomorrowland)에도 섰다. 올해 평창 동계 올림픽에선 한국 대표 디제이로 출연해 전 세계 수억 명의 시청자 앞에서 라이브를 선보였다.

“얼마 전에 마틴 게릭스 이비자 파티에 갔는데 다이로(Dyro)랑 유명한 친구들이 다 있는 거에요. 저 혼자 동양인이니까 (거기 있는 디제이들이) 줄리안 조던(Julian Jordan)한테 쟤 누구냐고 물어보더라고요. 레이든이라고 하니까 다들 ‘어! 나 쟤 알아’ 그러는 거에요. 이름은 다 들어본 거죠. ‘이젠 어느 정도는 올라왔구나!’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죠. 저는 한국에서 공연할 때보다 유럽에서 공연할 때 팬이 더 많아요. 길 가다가도 알아봐주고. 인기가 많은 정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성과는 결코 공짜로 얻어지지 않았다. 무모할 정도로 투자하고 도전해 노하우를 터득한 결과다. 레이든은 1년에 무려 1/3을 해외에서 보낸다. 바쁜 공연 스케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외 뮤지션들과 현지에서 콜라보하고 그들과 네트워크를 쌓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음악 작업은 같이 앉아서 하는 게 정확하거든요. 디테일하고. 이메일로 주고 받으면서도 하지만 이걸 설명하기가 힘들잖아요. 가능하면 만나서 하려고 하죠.”

아시아 디제이를 바라보는 편견을 걷어내고 그들 사이에 섞이기 위해 레이든은 수없이 캐리어를 굴리고 시차를 견뎌야 했다. 공연도 없는데 단지 콜라보를 위해 아프리카와 네덜란드를 오가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기운이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경험들을 통해 조금씩 EDM 리더들의 성공 비결을 배울 수 있었다.

“디제이는 이비자를 가야 해요. 왜냐면 이비자를 가야 만남이 생기거든요. 예를 들면, 마틴 게릭스 파티에 초대 받아서 갔어요. 거기에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가 같이 있어요. 그런 게 한두 명이 아니고 너무나 많은 유명한 친구들이 있어요. 마틴 게릭스 파티가 12시에 끝나면 다같이 ‘데이빗 게타(David Guetta) 파티 가자!’ 그래요. 그런 게 매일 같이 일주일 내내 있어요. 그건 비즈니스로 만나는 것도 아니고 자연스럽게 만나서 자연스럽게 술 먹다 친해지는 거에요. 그게 제일 좋은 거잖아요.”

이비자에 가야 하는 이유는 네트워크 쌓기 말고도 또 있다. “거기는 EDM보다 테크노나 언더그라운드 음악이 더 세잖아요. 거기에 심취하게 되고 정신을 한 번 차리게 되더라고요. ‘아, 이런 게 하우스 음악이었지.’ 거기는 심지어 샴페인에 돈 쓰려고 오는 사람들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좋아해요. 클럽 데코레이션도 파티에 따라 하루에 한 번 바꾸더라고요. 저는 테크노를 하진 않지만 며칠 지내다 보면 작업을 할 때 저도 모르게 테크노적인 걸 작업하게 되더라고요. 그 바이브가 제 몸에 남아 있다는 얘기잖아요. 그런 게 진짜 영감이 돼요.”

최근에 이비자가 과도하게 상업화됐다는 비판을 자주 읽었지만 레이든이 얘기해주는 이비자는 또 달랐다. “잠깐 그랬던 것 같아요. 정말 EDM 막 터질 때. 2012년에서 14년 정도. 그런데 한 3년 전부터 바뀌는 것 같아요. 옛날에 갔을 땐 하드웰(Hardwell), 페데 르 그랑(Fedde Le Grand),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이런 친구들 포스터로 도배됐는데 지금은 제 친구들도 거의 못 틀어요. 왜냐면 쇼도 없고 부킹이 와도 빅 디제이들한테만 가니까. EDM은 우수아이아(Ushuaia)나 커머셜한 곳들, 관광객들 많은 곳에서 하지 그게 메인은 아니에요. 이젠 EDM 파티는 거의 없고 마르코 카롤라(Marco Carola) 파티, 솔로문(Solomun) 파티, 이런 게 핫해요.”

 

기타리스트에서 디제이로

 

레이든은 중학교 1학년 때 기타를 잡으며 음악에 입문했다. 어느 기타리스트가 황홀한 표정으로 솔로를 연주하는 동영상을 봤는데, ‘저건 무슨 느낌일까’ 궁금해 무작정 기타를 샀다. 이후 1년 동안 학원도 다니고 밴드부도 만들어보며 기타와 록에 푹 빠졌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친척의 친척인 기타리스트 한상원을 소개 받아 배울 기회도 얻었다.

“저는 그때 최신 록 음악을 되게 좋아했어요. 근데 한 선생님은 블루스 같은 옛날 음악들을 숙제로 내주셨어요. ‘네가 좋아하는 음악 다 여기서 온 거야’ 하시면서. 저는 시키니까 그냥 했죠. 그런데 고등학교 졸업하고 일본 음악학교에 유학을 갔는데 선생님들이 제가 치는 걸 보고 왜 굳이 여기 왔냐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막 천재라는 게 아니고 거기는 초보적인 것부터 배우는 곳이잖아요. 저는 이미 다 하는 상태에서 간 거니까. 그때 가서 잘 배운 거였구나 깨달았죠.”

천상 로커라 처음엔 디제잉이 별로 재밌지 않았다. “기타로 공연하면 그날의 필이나 컨디션에 따라 다른 연주를 하는 거잖아요. 내가 나를 발산할 수 있잖아요. 근데 디제잉은 녹음된 노래를 버튼 눌러 던지는 거니까 내 흥이 폭발하는 데에 한계가 있는 거에요. 그런데 계속 하다 보니까 그런 재미만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사람들과 호흡하고 관객을 이끌면서 밴드할 때는 생각도 못 했던 걸 경험했죠. 음악이 잘 섞일 때는 너무 짜릿한 거에요.”

그는 최근에 다시금 기타를 잡는 일이 많아졌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가 대표적이다. 오직 그 이벤트만을 위해 작곡한 곡을 틀고 그 위에 라이브로 기타를 연주했다. 울트라 코리아(Ultra Korea) 무대에서도 기타를 들고 부스 위로 올라갔다. 라이브 드러머까지 데리고 뮤즈(Muse)의 ‘Knights Of Cydonia’를 연주했다.

“사람들이 디제이만 보는 것에 지쳐가는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 사람들은 원래부터 퍼포먼스를 좋아해요. 울트라 코리아 이전에도 월디페(World DJ Festival)에서 아비치(Avicii) 퍼포먼스를 했는데요, 마지막에 ‘Wake Me Up’ 할 때 기타를 메고 올라갔는데 아직 치기도 전인데 사람들이 ‘와~!’ 장난 아니게 함성을 지르는 거에요. 그거 자체를 좋아하는 거에요.”

수준급 기타 실력은 해외 아티스트들이 레이든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니키(Nicky Romero)나 페데(Fedde Le Grand) 이런 친구들이 제가 스튜디오에서 기타 치면 놀라요. 너무 좋아해요. 그런 것 때문에 저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게 연습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평생을 했기 때문에 기타 잡으면 그냥 하는 거거든요. 그게 자연스런 제 모습인 것 같아요. 평창 때도 내가 뭘 좋아하고 레이든이 누군지 나의 루트에서 오는 음악을 다 넣자 해서 만든 거에요.”

 

Heart Of Steel

 

레이든을 지금으로 만든 일등공신은 무엇일까? 어느 정도 자리잡았다고 느낀 첫 번째 전환점을 물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프로토콜에서 ‘Heart Of Steel’을 낸 것”이라고 답했다. 울트라 마이애미 디제잉 경력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재차 프로토콜 음악 발표라고 강조했다.

“노래를 만들어서 어느 정도 반응이 있은 뒤 활동하는 것과 그냥 디제잉만 했을 때랑 완전히 달라요. 예전엔 유튜브에 울트라 영상 올려도 ‘이게 누구야?’ 같은 댓글만 달렸어요. 그런데 지금은 울트라 끝나고 하루 있다가 들어가보면 다른 댓글들이 쫙 달려 있어요.”

“니키 로메로가 원래 프로그레시브(Progressive)랑 일렉트로(Electro) 위주로 틀지 퓨처 베이스(Future Bass) 안 틀거든요. 근데 제 음악 사인한 뒤로 계속 트는 거에요. 되게 안 믿겨졌어요. 그 노래 낸 게 2017년 1월이었고 2월에 태국에 공연을 갔는데 가보니 니키도 부킹이 됐더라고요. 니키가 ‘오늘 올라와!’ 하는 거에요. ‘어? 뭐지? 내가 부탁도 안 했는데?’ 그러면서 씬에 알려졌고 페데도 저 서포트 많이 해줬고 마틴도 도와주고 하다 보니 지금에 오게 됐어요.”

‘Heart Of Steel’은 처음엔 번번이 거절만 당했다. 2013년 처음 코드를 녹음한 후 수없이 다듬고 수정한 역작이었고, 스타 보컬 브라잇 라이츠(Bright Lights)까지 참여했지만, 막상 완성하니 내겠다는 레이블이 없어 프리 다운로드로 공개할 마음까지 먹었다. 그런데 장르를 프로그레시브 하우스(Progressive House)에서 퓨처 베이스로 바꾸자 반응이 달라졌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퓨처 베이스 버전이 머리에 떠오르는 거에요. ‘바꾸면 좋을 것 같은데?’ 딱 틀었을 때 매니저랑 저랑 동시에 ‘오! 이거다!’ 했어요. 프로토콜에 다시 던졌더니 1주일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얼마 뒤에 그쪽 A&R 하는 친구가 왓츠앱으로 니키가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때 카페에 있었는데 매니저 친구가 창피하게 막 소리지르고 그랬어요. (웃음)”

레이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못해도 아시아에서 1등은 해야죠. 한 번 뿐인 인생이고 음악을 함에 있어서도 한계를 돌파해 이루고 싶어요. 역사에 남고 싶어요.”

하지만 전제를 달았다. “연예인 쪽으로 푸는 쉬운 길도 있지만 그렇게 성공한다 해도 내가 진심으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닐 것 같아요. 약간 꼭두각시 되는 것 같고. 저는 뮤지션, 음악성 있는 디제이, 이런 걸 지켜가면서 성공하고 싶어요. 제 팬들은 제 음악을 좋아하는 거지 연예인스러운 걸 좋아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걸로 가다 보면 본질에서 멀어질 것 같아요.”

October 10t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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